내수기업들 성장에 따른 사업 부진 책임지거나 부담 느껴 스스로 사퇴한 듯

"중국 시장, 다시 시작하라."

HP·노키아·LG전자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에서 잇달아 고배를 마시고 있다.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지역법인 CEO(최고경영자)가 바뀌는가 하면, 본사 CEO가 중국을 직접 찾아 구조조정에 나서기까지 한다. 임원들도 줄줄이 지난해부터 옷을 벗고 있다.

◆글로벌 IT기업 매서운 CEO·임원 교체 바람

최근 중국 글로벌 IT기업들의 CEO와 임원들은 '교체 바람'이 매섭다. 지난 1일 HP는 스티븐 길(Gill) 전 한국HP 대표를 HP차이나 대표로 선임했다. 루빈 가오(Gao) 전 HP차이나 대표는 지난 4월 29일 옷을 벗었다. HP는 가오 대표의 정확한 사임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HP의 중국 내 PC사업을 담당하던 천궈웨이(陳國維) 부사장도 최근 사임했다.

 

노키아 역시 지난달 중국과 한국, 일본 지역을 책임지던 량위메이(梁玉媚) 부총재가 사임했다. LG전자도 최근 중국 지역대표를 맡고 있던 조중봉 부사장이 사임했다. LG전자는 중국 지역대표의 직급을 높여 사장급인 남영우 사장을 앉혔다. 올 초에는 휴대폰 사업을 맡고 있던 런웨이광(任偉光) LG전자 부사장이 사임했다.

잇달아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사령탑'을 교체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실적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가트너에 따르면 노키아의 경우 중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이 2009년 31.5%에서 지난해 20.5%로 1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HP 역시 2009년 1분기 11.6%였던 중국 PC 시장 점유율이 올 1분기에는 9.3%로 줄어들었다. HP는 세계 PC 시장에서는 1위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레노보와 델에 밀려 3위에 불과하다. 중국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LG전자도 당초 올해 중국 시장에서의 스마트폰 매출을 중국 전체 휴대폰 매출의 40%까지 끌어올리는 등 공격적인 목표를 잡았지만 성장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국 IT기업의 약진에 고심

글로벌 IT기업들의 사업부진은 TV·휴대폰 등 중국 기업의 약진이 큰 원인이다. 이들은 한국·일본 기업을 벤치마킹해 글로벌 IT 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TV 시장의 경우 중국 내수업체들은 LG디스플레이의 3D(입체) LCD 화면 부품(패널)을 장착해 한국·일본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줄였다. 그러면서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 부담이 적은 점을 활용해 가격을 대폭 낮췄다.

그 결과 중국 시장조사기관인 AVC에 따르면 하이얼·하이센스 등 중국 현지업체들의 3D TV 시장점유율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지난해까지 이들 업체의 점유율은 2% 미만이었다. 휴대폰 역시 ZTE·화웨이 등 현지업체들이 일반 휴대폰(피처폰)은 물론 중저가형 스마트폰을 내놓으며 빠르게 글로벌 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있다.

글로벌 IT기업 CEO들은 중국을 직접 찾으며 시장 접근 전략을 다시 다잡고 있다. HP는 지난달 29일 레오 아포테커 CEO를 비롯한 임원 20여명이 한꺼번에 중국을 찾았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도 지난해 10월 이후 3번이나 중국을 직접 찾아 유통업체 등 현장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IT기업들이 스마트폰 등 전략제품의 점유율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 조선경제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