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기술·디자인 격차 줄자 소비자 체감 사로잡기 경쟁, 개발 기간 1~3년은 기본
갤럭시S2 '기울이기' 기능, 검증 위해 2400회 실험 거쳐… 애플, 멀티터치 등서 앞서가 MS·구글도 기능개선에 올인
"IT기기 최종 경쟁력은 인간 체감이 좌우"

최근 출시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S2'에는 '기울이기' 기능이 있다. 화면의 두 지점을 누른 상태에서 사용자가 휴대폰을 앞뒤로 기울이면 화면 속 사진이 확대되거나 축소된다.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도 원하는 크기로 사진을 볼 수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삼성전자는 이 기능을 개발하는 데 3년이라는 세월을 투입했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해당 기술을 체감하는 사용자가 과연 만족하는지 확인하는 데 개발 기간 대부분을 사용했다. 과연 몇 도 경사각으로 기울였을 때 확대되거나 축소돼야 사용자가 편안하고 만족하게 여길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X, Y, Z 3개 축에서 모두 적정 각도를 확인해야 했다. 결국 관련 측정 실험만 2400회를 거쳐야 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LG전자·애플·HTC 등 세계 스마트기기(스마트폰, 태블릿 PC) 업체들은 요즘 사용자의 체감(體感)을 즐겁게 하는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른바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키워드 참조)' 기능 경쟁이다.

사용자 경험이란 디자인·음향·진동·화질 등 제품의 각종 요소를 통해 느끼는 소비자의 체감 만족도다.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기기 업계는 그동안 주로 속도·용량·두께 등 성능을 나타내는 '수치'로 경쟁했다.

그러나 최근 주요 업체 간의 기술 격차는 거의 무의미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젠 수치로는 나타낼 수 없는 '체감'을 개선하는 경쟁이 중요해진 것이다. 각 업체는 엔지니어는 물론 디자이너, 음악가까지 동원해 '사용자 체감'을 높이기 위한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더 나은 체감 위해 검증만 수천회

기술은 객관적 비교가 가능하지만, 사용자의 체감은 주관적이다. 인간의 감각은 민감한 데다가 개인차도 커서 '좋은 체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수많은 체험 데이터가 필요하다. 적절한 '기울이기 각도'를 찾기 위해 2400번이나 실험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신뢰'도 중요하다. 아무리 새로운 기능이라도 10% 이상 오작동이 일어나면 사용자는 짜증을 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각국 사용자별로 스마트폰을 쥐는 습관이 다른 점도 고려해야 했다. '기울이기' 기능 탑재에 꼬박 3년이 걸린 이유다. 임덕신 책임연구원은 "제품이 나오자 모두 '아이 못 낳고 시달리던 며느리가 아들을 낳은 기분'이라며 기뻐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이 무심코 듣는 갤럭시S2의 기본 벨소리와 '버튼음' 개발에도 약 1년이 걸렸다. 갤럭시S2의 기본 벨소리는 3분9초, 전원을 켤 때 들리는 버튼음은 5초, 일반 버튼음은 수 msec(1msec는 10분의 1초)에 불과하다.

 

그러나 연구원들은 휴대폰에 단순한 '소리'를 넣는 게 아니라, 사용자의 체감 만족도를 높여야 했다. 이 때문에 연구원들은 기본 벨소리의 경우 편곡 장르(뉴에이지)를 정하는 데에만 3개국 900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작곡 실무자는 아예 내부직원 중 영화·CF 음악 작곡 경력자들이 맡았다.

세밀한 음질을 위해 녹음은 삼성전자 본관에 설치한 음악 스튜디오에서 직접 진행했다. 스튜디오는 사운드 작업을 위한 PC는 물론 작곡을 위한 전자 건반악기도 갖췄다. 또 방이 두 곳으로 나뉘어 성우 녹음과 악기 녹음을 따로 할 수 있다. 지성욱 책임연구원은 "시설이 아까워 연말에는 임직원들의 노래로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을 만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애플·구글도 UX 개발 박차

원래 UX의 강자로 꼽히는 애플 역시 소비자의 체감(體感)을 사로잡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애플의 스마트폰 아이폰 화면을 보면 응용프로그램(앱)을 작동시키는 아이콘이나 앱 속에 등장하는 버튼 크기가 대부분 2~3cm이다. 이는 애플이 소비자의 체감을 고려해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사실상 아이폰용 앱 디자인을 통일시키기 때문이다.

애플의 아이폰용 디자인 안내서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Human Interface Guideline)’을 보면 휴대폰용 응용프로그램(앱) 디자인에 대한 ‘잔소리’가 가득하다. 예를 들어 아이폰 화면에서 응용프로그램(앱) 버튼은 mm(밀리미터) 단위까지 예시돼 있다. 1mm도 안 되는 차이에도 사용자의 체감이 달라진다는 게 애플의 주장이다. 애플 아이폰에서 사용자들이 손쉽게 작동시키는 멀티터치(Multi-Touch·한 화면에서 두 지점 이상의 접촉을 감지하는 기술) 기능도 마찬가지다. 멀티터치 기능을 통해 사용자는 손가락 두 개를 화면에 올려놓고 사진을 늘이거나 게임을 즐긴다. 그러나 애플은 이 기술 개발에 1년 이상이 걸렸고, 지금도 끊임없이 추가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애플이 낸 멀티터치 특허를 보면 스마트폰은 향후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거나, 손도장을 찍거나, 거절의 뜻으로 ‘X’자를 만드는 경우를 모두 인식하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구글(Google) 역시 UX 기능 개선에 최근 매진하고 있다. 이들의 주력 분야는 음성·동작 인식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명령을 보다 편하게 입력하도록 하는 것이다. MS는 최근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말이나 표정으로 원하는 바를 컴퓨터와 스마트기기에 전달하는 기능을 개발 중이다. 도널드 노먼(Norman) 캘리포니아주립대 명예교수는 “현대 IT기기는 복잡하지만, 그 복잡함을 혼돈(confusion)으로만 전달해서는 사용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없다”며 “결국 IT 기기의 최종 경쟁력은 인간의 체감이 좌우할 것”이라고 밝혔다.

☞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

사용자가 제품을 쓸 때 디자인·음향·진동·화질을 눈, 손, 귀 등으로 느끼는 감각과 그로 인해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즉 제품을 쓰면서 사용자가 느끼는 총체적인 느낌이다. “그 회사 제품답게 참 오래가고 화면 전환이 빨라 제품에 신뢰가 갔다”는 식의 스토리(story)로 기억된다. 사용자의 총체적인 느낌이므로 단순 기술 개발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 출처 : 조선경제i ]